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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출발음이 들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가까스로 올라탔고, 숨을 고른 뒤에야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종점행인데 전광판에는 노선도에 없는 역 이름이 떠 있었다.
아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 노선과 역을 배경으로 쓴 창작 나폴리탄 괴담이다. 실제 지하철 이용 안내와는 관련이 없다.
청람선 막차 승객 안내문
청람선 막차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원역 도착 안내가 나왔는데도 열차가 멈추지 않았다면 이 안내문을 읽으십시오. 정상 운행 중이라면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더 이상 펼치지 마십시오.
현재 열차는 정규 운행 구간을 벗어났습니다. 아래 지시를 따르면 해원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1. 휴대전화보다 객실 시계를 믿으십시오
객실 전광판 오른쪽 위에 표시된 시각을 확인하십시오.
오전 12시 53분이라면 아직 첫 번째 회송 구간입니다.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바꾸고 4호차로 이동하십시오.
오전 2시 17분이라고 표시되어 있다면 휴대전화 전원을 완전히 끄십시오. 잠시 뒤 발신자 이름이 ‘기관실’로 표시된 전화가 올 수 있습니다. 받지 마십시오. 청람선 기관실은 승객의 전화번호를 알지 못합니다.
2. 첫 번째 4호차에서 기다리십시오
객실 사이의 문 위에는 다음 칸의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4호차 표시가 두 번 나오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처음 나타난 4호차로 들어가 가운데 좌석에 앉으십시오. 두 번째 4호차의 불은 조금 더 밝고 내부도 깨끗해 보이지만 그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잘못 들어갔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다음 역에서 내리십시오. 다만 그 역은 해원역이 아닙니다.
3. 지나간 역의 이름이 들려도 창밖을 보지 마십시오
방송에서는 이미 지나온 역을 거꾸로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역 이름만 들린다면 정상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실 승객은 준비해 주십시오”라는 문장까지 이어질 경우 창문과 출입문에서 고개를 돌리십시오.
열차는 멈추지 않습니다. 창밖에서 승강장이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4. 맨 끝 좌석의 승객에게 말을 걸지 마십시오
4호차 맨 끝에 회색 외투를 입은 승객이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 탔는지 묻거나 종점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마십시오.
그 승객은 항상 창문을 보고 있습니다. 유리창에 비친 좌석이 비어 있더라도 모른 척하십시오.
잠시 뒤 승객이 일어나 통로를 걸어올 것입니다. 눈을 감을 필요는 없습니다. 얼굴 대신 신발만 바라보십시오. 발소리가 뒤로 지나갔는데도 신발이 눈앞에 남아 있다면 고개를 숙인 채 다음 방송을 기다리십시오.
5. 터널 벽 앞에서 문이 열리면 자리를 지키십시오
열차가 급정거한 뒤 출입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문 바로 앞에 콘크리트 벽이 보이는 경우 절대 내리지 마십시오.
벽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라도 출입문 닫힘 버튼을 누르면 안 됩니다. 열차가 알아서 문을 닫을 때까지 빈 맞은편 좌석을 바라보십시오.
문이 닫힌 뒤 맞은편 좌석에 젖은 발자국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닦지 마십시오. 해원역에 도착하면 역무원이 처리합니다.
6. 조명이 꺼지면 일곱까지만 세십시오
두 번째 터널에 들어가면 객실 조명이 꺼집니다. 당황하지 말고 속으로 하나부터 일곱까지 천천히 세십시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숫자를 먼저 말하더라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여덟이라는 숫자를 들은 순간에는 세는 것을 멈추고 숨을 참으십시오.
조명이 돌아온 뒤 좌석 수가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다시 세어보지 마십시오.
7.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청람선 회송 구간의 터널에는 작업 통로가 없습니다. 달리는 열차의 창문을 바깥에서 두드릴 사람도 없습니다.
세 번씩 두드리는 소리가 나도 창문을 열거나 손으로 답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이 안내문으로 귀를 가리고 해원역 안내를 기다리십시오.
목소리가 가족이나 친구와 같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이 열차에 탄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8. 해원역 표지판을 끝까지 확인하십시오
오전 1시 13분, 열차는 다시 해원역 승강장에 도착합니다. 문이 열려도 곧바로 내리지 마십시오.
승강장 표지판의 양쪽 화살표가 모두 보이면 정상 해원역입니다. 한쪽 화살표가 비어 있다면 자리에 남아 문이 다시 닫히기를 기다리십시오.
다음에 문이 열리면 역무실이 바로 앞에 보여야 합니다. 역무원이 먼저 당신의 이름을 묻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안내문 뒷면에서 발견된 메모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직 첫 번째 4호차에 있는지 확인하세요.
나는 두 번째 4호차가 더 안전해 보여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 안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가운데 좌석에 앉아 이 안내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급히 돌아왔지만 처음 지나온 문이 사라졌습니다.
이 메모가 첫 번째 4호차에 있다면 누군가 대신 옮겨놓은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마세요.
남은 기록
다음 날 오전 5시 40분. 첫차를 준비하던 역무원이 4호차 가운데 좌석 아래에서 접힌 안내문 한 장을 발견했다.
막차 승객 명단을 확인하자 해원역에서 내리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상하게도 차량기지 CCTV 속 막차는 처음부터 빈 상태였다.
더 이상한 건 안내문이었다. 청람선에서는 이런 양식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뒷면의 글씨는 실종된 승객이 개찰구에서 작성한 분실 신고서의 필체와 일치했다.
그날 이후 해원역 막차는 종점에 닿기 전 모든 객실의 불을 한 번씩 끈다.
불이 꺼져 있는 시간은 정확히 일곱 초다.
이 이야기는 창작 괴담입니다
이 글의 청람선과 해원역, 승객 안내문은 모두 허구다. 실제 철도 노선이나 지하철 이용 수칙과 관련이 없다.
한 장소에서 이어지는 규칙 괴담을 더 읽고 싶다면 폐교 야간 경비원이 지켜야 할 11가지 근무수칙도 함께 볼 만하다.
짧은 이야기를 여러 편 골라 읽고 싶다면 학교·병원 규칙 괴담 7편으로 이어가면 된다.
여덟 가지 가운데 실제로 가장 지키기 어려울 것 같은 규칙은 무엇이었는지 댓글로 남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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