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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끈 차의 주행거리가 1킬로미터 늘었다.
주유 건은 아직 거치대에 있었고, 내 차는 흰 선 안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유기 화면에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심야 셀프주유소 이용 안내
1. 이 시간에는 직원이 상주하지 않습니다.
직원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도 손을 들어 응답하지 마십시오.
2. 주유 전 계기판의 총주행거리를 확인하십시오.
차가 멈춰 있는데 숫자가 바뀐다면, 주유기 화면의 단위부터 확인하십시오.
3. 정상적인 화면에는 금액과 리터가 표시됩니다.
킬로미터가 표시되면 그 주유기는 현재 다른 차량이 사용 중입니다.
주변에 보이는 차량의 수와는 관계없습니다.
4. 사용 중인 주유기에서는 간혹 경로 안내가 방송됩니다.
출발지는 말해도 되지만, 목적지를 묻는 방송에는 대답하지 마십시오.
목적지는 마지막으로 대답한 사람의 위치로 바뀝니다.
5. 차의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동안 화면의 남은 거리는 줄어듭니다.
두 숫자가 같은 속도로 바뀌는 것은 계기판 고장이 아닙니다.
6. 남은 거리가 1km 아래로 내려가면 옆 주유기의 이용을 권하지 않습니다.
이미 어느 주유기에서 출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7. 도착 안내가 들릴 때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확인하지 마십시오.
본인 차량의 화면이 먼저 켜졌다면, 안내가 끝날 때까지 화면에 비친 얼굴을 세지 마십시오.
8. 방송이 멎고 주행거리가 멈추면 이용을 마쳐주십시오.
화면에 남은 거리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에는 주유소를 재이용하지 마십시오.
화면에는 12km가 떠 있었다.
내 차의 총주행거리가 한 칸 올라갈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었다.
스피커에서 낯익은 도로 이름이 나왔다.
조금 전 내가 지나온 터널, 교차로, 이 주유소로 꺾어 들어온 삼거리였다.
방송은 그 길을 나보다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문을 잠갔다.
화면이 1km를 지나 800m로 바뀌었다.
아무것도 연결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가 시작됐다.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
입을 다물고 있자, 조수석 쪽 스피커에서 내 목소리가 났다.
“여기.”
그 순간 내비게이션이 켜졌다.
지도에는 주유소도, 숲도, 도로도 없었다.
내 차를 나타내는 작은 화살표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화살표가 하나 더 있었다.
방송이 멎었다.
총주행거리도 멈췄다.
주유기에는 금액과 리터가 돌아왔다.
나는 주유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다음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계기판의 숫자가 다시 올라갔다.
뒷좌석 스피커가 조용히 말했다.
“다음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
도로 위에서 안내방송을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심야 고속도로 휴게소 괴담에서 이어집니다.
기계의 숫자가 나를 가리키는 불안은 빈 저울에 내 몸무게가 표시된 분리수거장 괴담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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