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수거장 나폴리탄 괴담|빈 저울에서 내 몸무게가 나왔다

    2026. 9. 23.

    by. 기록관리인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저울에서 68.4kg이 찍혔다.

    오늘 아침, 양치하기 전에 잰 내 몸무게와 같았다.

    영수증에는 물품 이름 대신 ‘아직 사용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두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놓인 빈 계량대와 영수증

    이 아파트 분리수거장은 수요일 밤에만 문을 연다.

    입주 첫 주라 빈 택배 상자 몇 개를 들고 내려갔는데, 관리인은 내 손보다 발밑을 먼저 봤다.

    “저울 노란 선은 밟지 마세요.”

    내가 한 발 물러서자 숫자가 0으로 돌아갔다.

    관리인은 방금 나온 영수증을 읽지도 않고 접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벽에 붙은 종이를 가리켰다.

    끝부분이 여러 번 찢겼다가 투명 테이프로 붙은 안내문이었다.

     

    수요일 야간 분리배출 안내

    1. 반입한 물품만 계량대에 올려 주십시오.

    몸을 기대거나 발끝을 걸치지 마십시오.

    무게가 같으면 같은 물품으로 접수될 수 있습니다.

     

    2. 접수 화면에 ‘아직 사용 중’이 표시되면 계량대에서 물품을 내려놓고 세 걸음 물러나십시오.

    표시가 사라질 때까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고장 난 물건에도 이 규정은 적용됩니다.

     

    3. 상자에 붙은 이름표는 집에서 제거해 오십시오.

    이곳에서 이름을 뜯으면 이름이 붙어 있던 쪽을 폐기물로 처리합니다.

    라벨을 손에 쥐고 계시다면 내려놓지 마십시오.

     

    4. 영수증의 수량과 실제 가져온 물품 수를 대조하십시오.

    한 개가 더 적혀 있어도 주변에서 채울 물건을 찾지 마십시오.

    분류 담당자에게 ‘계량 취소’를 요청한 뒤 문밖에서 기다리십시오.

     

    5. 뒤쪽 철문에서 본인의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마십시오.

    반입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업무는 없습니다.

    호출이 반복되면 현재 들고 있는 것을 바닥에 두지 말고 출입구까지 이동하십시오.

     

    6. 계량 취소 영수증은 귀가할 때까지 펴 보지 마십시오.

    현관문이 닫힌 뒤 품목과 수량을 확인하십시오.

    품목이 ‘반입자’일 경우, 다음 주에는 같은 사람이 내려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마지막 줄은 무슨 뜻이에요?”

    관리인은 대답 대신 내 상자들을 하나씩 세었다.

    네 개였다.

    상자를 올리자 저울에 1.2kg이 찍혔다.

    관리인이 인쇄 버튼을 누르는 순간 뒤쪽 철문이 울렸다.

    누가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일공삼동 칠공이호.”

    내 주소였다.

    철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밀려 나왔다.

    택배 상자에서 떼어 낸 내 이름표였다.

    분명 집에서 버리고 왔는데.

    관리인이 내 팔을 잡았다.

    “몇 개 가져오셨죠?”

    “네 개요.”

    그는 영수증을 손으로 가린 채 다시 물었다.

    “상자 말고요.”

    그제야 화면 구석의 작은 숫자가 보였다.

    수량 5.

    나는 안내문에 적힌 대로 계량 취소를 요청했다.

    철문 안에서 이번에는 내 이름을 불렀다.

    너무 익숙해서, 내가 방금 대답한 줄 알았다.

    관리인은 네 개의 상자를 모두 내 품에 안겨 주고 접힌 영수증을 맨 위에 올렸다.

    “문 닫고 보세요.”

    엘리베이터에서도 손을 펴지 않았다.

    현관에 도착해 상자를 내려놓고, 문이 완전히 잠기는 소리까지 들은 뒤 영수증을 펼쳤다.

    품목: 반입자.

    수량: 1.

    처리: 계량 취소.

    안내문 마지막 줄이 생각났다.

    다음 주에는 같은 사람이 내려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휴대전화로 관리실 번호를 찾는데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혼자 사는 집이었다.

    욕실문 안쪽에서 내 목소리가 말했다.

    “다음 주엔 내가 내려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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