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야 식물원 나폴리탄 괴담|빈 화분에 내 이름이 꽂혀 있었다

    2026. 9. 10.

    by. 기록관리인

    유리문 밖으로 나오자 코트 안주머니에서 흙이 떨어졌다.

    분명 온실에 들어갈 때는 없던 흙이었다.

    밤의 유리 온실 통로와 이름표가 꽂힌 빈 화분
    AI 삽화

     

    야간 관람객에게 드리는 안내

    야간 개방 시간에는 동쪽 온실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안내판의 식물 이름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검색하지 마십시오.

    낮에 붙인 이름표는 해가 지면 다른 대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입구에서 받은 흰 장갑은 퇴장할 때까지 벗지 마십시오.

     

    1. 잎보다 먼저 움직이는 그림자

    천장 조명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잎이 그대로인데 그림자만 통로 쪽으로 뻗어 나온다면 화분 뒤로 물러서십시오.

    그림자를 밟지 말고 끝이 다시 화분 아래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밤에는 식물보다 뿌리가 먼저 산책을 시작합니다.

     

    2. 빈 화분의 이름표

    흙만 담긴 화분에도 이름표가 꽂혀 있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장갑 낀 손으로 이름표를 뒤집어 놓으십시오.

    뒷면에는 파종일이 적혀 있으나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날짜를 확인한 관람객은 다음 방문부터 입장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3. 물을 달라는 소리

    분무기는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잎 사이에서 목이 마르다는 말이 들려도 물병을 꺼내지 마십시오.

    사람의 물을 마신 식물은 다음 날부터 그 사람의 목소리로만 안내를 요청합니다.

    분실물 보관대에 놓인 물병은 모두 빈 병이니 만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4. 향기가 끊기는 자리

    온실 중앙에는 흰 꽃이 모여 있는 화단이 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향이 약해지는 날에는 화단을 돌아서 이동하십시오.

    꽃이 향기를 내보내는 날도 있고 주변의 냄새를 모두 가져가는 날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장갑에서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5. 유리벽에 맺힌 손자국

    유리 안쪽의 물방울을 닦지 마십시오.

    손바닥 모양으로 비어 있는 부분은 직원이 청소를 빠뜨린 곳이 아닙니다.

    손자국의 손가락 수가 본인과 같더라도 손을 맞대지 마십시오.

    먼저 맞댄 쪽이 안쪽이 됩니다.

     

    6. 가지치기 담당 직원

    녹색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통로에 서 있으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가위를 들고 어깨 높이를 재더라도 자세를 바로잡지 마십시오.

    밤에는 곧게 선 것을 새 가지로 분류합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면 한쪽 무릎을 조금 굽히십시오.

     

    7. 닫힌 꽃이 한 송이도 없을 때

    출구 옆 덩굴에서는 퇴장 시간에 맞춰 꽃이 닫힙니다.

    모든 꽃이 열려 있다면 손목시계를 보지 말고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틀린 것이 아니라 아직 낮에 속한 관람객이 온실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찾아 깨우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8. 장갑을 돌려주는 곳

    장갑은 유리문 바깥의 회수함에 넣으십시오.

    장갑 안쪽에 뿌리처럼 보이는 실이 붙어 있어도 잡아당기지 마십시오.

    회수함 뚜껑이 닫힌 뒤에만 맨손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 안에서 흙이 만져지면 다시 들어오지 말고 그대로 귀가하십시오.

     

    다음 날 아침

    나는 코트를 벗어 현관에 걸었다.

    안주머니를 뒤집으니 흙과 함께 작은 이름표가 떨어졌다.

    어젯밤 뒤집어 놓았던 이름표였다.

    이번에는 뒷면만 위로 향해 있었다.

    파종일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적혀 있었다.

    옮겨 심은 장소.

    그 밑에는 우리 집 주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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