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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통로 우산 대여소의 야간 직원은 반납된 우산 안쪽에서만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고 젖은 면을 확인하라는 수칙을 다시 읽는데, 손잡이에 걸린 대여표에는 손님의 이름 대신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의 남은 거리가 한 줄씩 적혀 있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야 첫 손님이 왔다.
나는 가게 앞 통로를 닦고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도 없었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어깨도 말라 있었다.
손님은 우산을 접지 않은 채 반납대에 세웠다.
우산 아래에서만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 대여소 장면을 표현한 AI 삽화 카운터 유리 밑에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점장은 인수인계라고 했지만 첫 줄에는 직원 이름을 쓰는 칸조차 없었다.
반납 수칙 1. 우산은 펼친 상태로 받으십시오.
젖은 면이 바깥쪽이면 일반 반납대에 놓습니다.
안쪽이면 접지 말고 물받이 위에 세워 두십시오.
손님에게 어디에서 비를 맞았는지 묻지 마십시오.
나는 물받이를 가져왔다.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젖은 운동화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천장 쪽을 향한 우산 바깥면이 보송보송했다.
"대여표도 드려야 하나요?"
손잡이에 종이띠가 걸려 있었다.
열두 걸음.
숫자가 아니라 그 말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반납 수칙 2. 안쪽이 젖은 우산의 대여표는 떼지 마십시오.
대여표에 남은 거리는 우산의 주인이 집까지 가야 할 거리입니다.
직원이 손잡이를 잡고 걸으면 그 거리에서 차감됩니다.
나는 우산을 옮기느라 이미 세 걸음을 걸었다.
종이띠에는 아홉 걸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손님은 그제야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댔는데 젖은 옷이 닿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게 문밖에는 통로 대신 우리 집 현관이 보였다.
신발장 위에 올려 둔 택배 상자까지 같았다.
가게와 집은 버스로 마흔 분 거리였다.
나는 손잡이를 놓았다.
현관문이 사라지고 통로가 돌아왔다.
손님이 말했다.
"아직 멀었네요."
나는 점장에게 전화하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함께 살지도 않는 엄마가 남긴 문자는 짧았다.
네가 문 앞에 있다는데 왜 전화를 안 받니.
수칙 뒷장 모서리가 유리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종이를 당기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반납 수칙 3. 귀가가 끝나지 않은 우산은 반납 처리하지 마십시오.
남은 거리가 0이 되면 주인의 집에 도착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주인은 대여표를 작성한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잡은 사람입니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우산을 놓았다고 주인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손님은 의자에 앉은 채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반납해 주세요."
"아직 아홉 걸음 남았는데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나는 물받이를 발로 밀어 카운터 아래에 넣었다.
우산은 그대로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지 않았으니 숫자도 변하지 않았다.
손님은 처음으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수칙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반납 수칙 4. 거리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우산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보관 중에는 매시간 물받이를 비우십시오.
대여표를 물에 적시면 남은 거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우산 아래에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나는 손잡이 대신 물받이만 빼냈다.
손님은 출입문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물을 버리고 돌아오는 동안 그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문밖이 잠깐 우리 집 복도로 바뀌었다.
그날 나는 퇴근하지 못했다.
다음 날 점장은 사정이 생겼다는 문자만 보냈다.
물받이를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해야 했다.
비는 계속 굵어졌다.
사흘째 저녁, 엄마가 다시 전화했다.
문 앞에 선 사람이 내 이름을 말하며 들어오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 언제부터 우산을 거꾸로 쓰니?"
전화기 너머에서 빗물이 쏟아졌다.
나는 카운터 아래 종이띠를 봤다.
물에 젖어 글씨가 번져 있었다.
아홉인지 영인지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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